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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 에 관한 고찰

푸른파듀 2024. 6. 23. 09:14

 

우리는 살면서 많은 편견과 마주하며 산다. 그러나 요즘에는, 당연한 인식과 진리들마저 '편견'이라는 오명을 쓰고 비판 받는 듯 하다. 그렇다면 편견은 무엇일까? 왜 존재하는 것일까? 를 같이 고찰해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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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서로 다른 70 ~ 80억의 인구 수 만큼, 인종 - 학벌 - 성별 - 세대 - 성격 - 종교 등 '다름' 에 대한 무한에 가까운 경우의 수를 가지고 있다. 때문에 우리는 '어떠한' 카테고리에 범주화 하느냐에 따라, 끊임 없이 갈라지고 소속될 수 있다.

 

'인종' 이라는 카테고리, '종교' 라는 카테고리 '사는 지역' 이라는 카테고리, '성격' 이라는 카테고리 등, 우리는 어떤 범주에서는 집단이고 어떤 범주에서는 철저하게 독립적이다. 우리는 개인으로서 존재하는 동시에, (집단 속 '나'), 집단의 목표와 방향성에 맞춰 집단으로서의 '나'로서 존재하고 있다.

 

이 탓에 우리는 자신의 범주에 대한 모욕이나 칭찬 따위를 자기 자신과 동일시하여 보기도, 집단 속 일부 개인의 문제를 집단 전체의 시급한 문제로 놓기도 한다. 그리고 필자는 이점에서 상호 보완적인 구조가 존재함을 말한다.

 

말인 즉, 집단 속 의 '나' 는 개인으로서 집단 (사회나, 교육 등)이 요구하는 규칙과 질서에 부흥하고 헌신할 책무를 갖는 동시에, 집단으로서의 '나' 의 행동과 방향, 집단이 내게 요구하는 정체성에 대해서 끊임 없이 대화하며 수정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집단일 때 항상 책임감이 조각되고, 충동적이며, 극단주의자들에게 휘둘리기 쉬워지기 때문에 그렇다. 집단 내 에서의 '개인'의 목소리는 집단의 '방향성'에 묻히기 쉽고 개인의 아이덴티티와 생각은 집단의 '정체성' 에 물들기 쉽기 때문이다.

 

(이 문제들이 극단적으로 나타난 것이 나치즘과 2차세계대전이다.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저서에서 나치즘의 홀로코스트를 연구하며 상세하게 저술해놓은 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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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편견이란 무엇일까?, 편견은 다 악랄하고 악한 것일까? 그렇다면, 편견이라는 것이 왜 존재하고 우리에게 남아있는 것일까?

 

'편견'(偏見)의 정의는 '일반적인, 편향된 견해'를 뜻한다.

 

필자는 나아가 편견을 인간 고유함 (유전 등)과 경험적 요소를 토대로 쌓아 올려진 하나의 인식으로 여긴다. 세상을 보는 관점 인 것이다.

 

고유성 - 유전, 기질, 인간 본성 본능과 자연 법칙

경험적 요소 - 사회 문화적 환경, 가정환경, 개인적 경험, 집단적 경험, 인간관계 등

 
개방성, 우호성, 외향성, 성실성, 신경성을 나타내는 BIG5 성격이론

 

고유성에는 개방성 우호성 외향성 성실성 신경성을 나타내는 BIG 5 성격이론과 유전을 예시로 들 수 있다. 성실성과 우호성 (친화력) 은 나이가 들며 증가하는 경향이 있지만, 외향성과 신경성에 대한 변화는 거의 없다. 여기에 유전적 선호도 취미, 음식, 선호도 등과 가정의 비슷한 환경이 맞물린다.

 

경험적 요소에는 사회가 요구하는 기대치의 정도, 사회 문화적 환경, 비슷한 인간관계, 직업, 개인적 성취 경험, 개인적 실패 경험, 집단 내에서의 계층, 집단 내에서의 경험, 집단의 경험 등이 있다.

 

지금까지 말한 것들의 핵심이 무엇이냐? 세상에는 바꿀 수 있는 (통제가능한) 것이 있고, 바꿀 수 없는 것 (통제 불가능한 것) 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로인해 '편견'은 어쩌면 근거가 있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말해 근거 없는 편견은 없다. 편견의 근거가 잘못될 수는 있어도...

 

간단하게 뭉그러뜨려 이야기하자면, 길을 걷다가 뱀에게 물려 죽을 뻔 한 뒤, '뱀은 위험하다' 라는 인식이 생겼다면, 이것도 편견이긴 하다. 그러나 1. 근거가 있고 (경험적) 2. 합리적 (집단 즉 국가 및 사회 등과 개인 간에도 일치 할 수 있고 충분히 동의하여 합의 가능한 사안) 인 편견이라는 것이다.

 

A 정형외과에 다리 수술을 맡겼더니 완전히 엉망으로 수술하여 절제 위기에 처했다면, A 정형외과의 수준과 해당 집도의에 대한 "편견" 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1. 근거가 있고 2. 합리적이기 때문)

 

'일반적이고 편향된' 즉 한쪽으로 치우친 이 편견은 왜 존재하고 사라지지 않는가?

"'편견'은 존재할 수 밖에 없고 존재해야만 한다. 우리의 어떠한 인식의 일종으로서 각자 무한히 많은 관점들의 가치판단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가 내 답변이다.

 

물론 편견의 근거가 잘못될 수는 있다. "A 인종에게 사기를 맞았으니 A 인종은 전부 사기꾼이다" (1. 근거는 있다, 2. 그러나 그 근거가 합리적인 결과를 도출하지 못했을 뿐더러, 집단면에 있어서 인용받기도 힘든 개인적 극단 편향일 뿐이다.) 라는 식으로 말이다.

 

최근 들어 모든 '다름' 과 '진리'에 가까운 가치들을 사회 정치적 폭압과 이해관계로 인해 없애버리려는 시도들이 나타나는 것이 우려스러워 고찰해보았다. pc 주의가 득세하면서 '남/녀가 신체적, 직업 선호도 면으로 다르다' 라는 것도 편견이라거나, 성별과 성 소수자와 관련해서도 편견, 예술품을 평가하는 것도 편견 모든 것이 편견이라며 가치 판단 기준을 뭉개고 집단적이고 극단적인 결과론적 평등과 인식 자체를 입막음 하려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피임 기구가 100%가 아님에도, 피임 기구라고 명칭하고 판매할 수 있는 것처럼 (대표성), 살인, 강도, 성범죄 등 법에 명시된 범죄가 당연하게 잘못된 행위들인 것처럼 우리는 항상 집단 속 내 자신, 집단으로서의 내 자신의 방향과 행동을 관찰하고 수정하고 토의하고 합의해나가며, 합리적이고 근거 있는 건전한 '인식'을 바탕으로 기존의 편견을 수정하고 때론 없애며 때론 새로 찾아내기도 해야한다. 결국 문제 '인식'과 '발견' 이 선행되어야, 해결책도 나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