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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 팔레스타인의 분쟁 역사와 중동분쟁, 현재 하마스 사태까지 (1)

푸른파듀 2024. 1. 29. 09:52

이미지 출처 -  https://www.usatoday.com/story/graphics/2023/10/07/history-of-israel-and-palestine-conflict-and-the-latest-hamas-attacks-war-in-gaza-in-maps/71098600007/


 

<간단한 배경>

 

현 이스라엘의 땅은 가나안 땅이라 불리며 고대부터 성경 이전부터 그 주인과 사는 민족이 바뀌어온 곳이다. 이집트로부터의 독립, 유다와 이스라엘 왕국 페르시아, 헬레니즘 시대 하스몬 왕조와 로마 오스만, 20세기 프랑스와 영국 등의 통치와 계약으로서 존재 등의 길고 복잡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레바논과 요르단, 팔레스타인은 영국과 프랑스의 정치적인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국가이다. 그들의 역사는 사이크스-피코 협정, 그리고 몇몇 영국인들이 아라비아에서 이중 거래를 했던 시점까지만 거슬러 올라갈 뿐이다. 그러 비록 그들과 근본적 뿌리는 아니어도 그 땅이 고향인 것은 맞다. 허나 굳이 따지자면 이스라엘 쪽이 조금 더 뿌리와 근본을 가진 것은 맞다.

 

1880년대 이래로 유럽 유대인들은 중동으로 이주하여, 상대적으로 소규모였지만 수 세기 동안 이곳에(그리고 대부분의 다른 아랍 지역에) 존재했던 기존의 유대인 공동체에 합류했다. 유대인들의 이주는 시온주의 운동의 일환으로, 그리고 국민국가라는 유럽적 개념에 자극 받아 성서시대에 유대인이 마지막으로 지배했던 지역에서 유대인의 고국을 창설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본론> => 갈등의 시작

 

https://www.bbc.com/korean/international-57147399

 

오스만 제국이 1차 세계대전 이후 패망하면서 '팔레스타인' 지역을 영국이 장악하게 되었다. 이곳 사람들 대다수가 팔레스타인이고 그들의 땅이긴 했으나 동시에 유대인들의 조상 땅이었다. 전후 영국이 유대인의 고국을 정하는 과정 중 처음으로 분쟁이 생기기 시작한다.

 

영국은 1915년 아랍 민족이 오스만 제국의 반대 쪽으로 참전하는 것을 조건으로 영국 고등판무 맥마흔이 전후 팔레스타인 지역을 포함한 아랍국가의 독립을 약속한 '맥마흔 선언' 을 해놓고

맥마흔 선언

1917년 영국 내 외무장관 아서 벨푸어 유대 사회에 '벨푸어 선언' 으로 이스라엘 독립을 약속하며 이중 계약을 체결한다.

 

https://www.amazingtalker.co.kr/blog/ko/kr-en/81281/ &nbsp;영국 짤
 

세계사에서 뭔가 찜찜하고 이상하리만큼 꼬여있는 문제는 항상 이새끼를 찝으면 반은 맞다.

 

 
홀로코스트의 유대인,/이미지 출처 -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4141800
 

아무튼 1920 - 1940년대를 거치며 나치의 홀로코스트를 피해 이곳에 정착하는 유대인이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4%의 토지만을 보유한 유대인이 팔레스타인 지역의56%를 차지하게 되었다.

 

https://ko.wikipedia.org/wiki/%ED%8C%94%EB%A0%88%EC%8A%A4%ED%83%80%EC%9D%B8_%EB%B6%84%ED%95%A0%EC%95%88

 

1947년, UN은 팔레스타인 지역을 유대인 국가, 아랍인 국가로 분리하되, 예루살렘만을 분할하는 '팔레스타인 분할안'을 통과시켰으나, 아랍측의 거부로 실행되지 못했다.

 

 

 
https://kr.freepik.com/photos/%EC%9D%B4%EC%8A%A4%EB%9D%BC%EC%97%98-%EA%B5%AD%EA%B8%B0-%EB%B2%BD%EC%A7%80

1948년 영국이 떠나고 유대인 지도자들은 이스라엘 건국을 선언하자 바로 다음날 아랍 5개국이 이스라엘을 침공했다.

 

1차 중동전쟁 - <이스라엘 건국전쟁>

 

건국 다음 날 곧장 이라크 이집트 요르단 시리아 사우디아라비아 레바논 예맨 파키스탄 자치령 팔레스타인 아랍 진영 등으로 구성된 아랍연맹이 탱크와 전투기, 각종 화기로 구성된 수만명의 군으로 이스라엘을 침공했다.

 

이스라엘에는 m4 구형 셔면 탱크 30대, 영국군이 남기고 간 탱크 1대와 3만여명의 병사를 가진 것이 전부였는데, 그 마저도 3명중 1명 꼴로만 화기를 갖춘 상태였다.

 

 

 

허나 홀로코스트와 핍박의 서러움, 국가가 없어 본 자들의 절박감과 나라를 지키고 세우겠다는 간절한 이스라엘에 비해 아랍 연맹은 서로 눈치를 보며 병력과 질적 우세를  가지고도 제대로 싸우지 못하고 패했다. 

 

 

이스라엘은 기존 56% -> 80% 까지 팔레스타인 땅을 점령하게 되고 이집트 왕국은 몰락하고 닛세르 공화국이 설립되게 되었고, 오늘 날의 가자 지구는 이집트가, 서안 지구는 요르단이 점령하게 되었다.

 

 

1949 휴전 경계선

<2차 중동전쟁> - 1956年 10月 29日 ~ 11月 7日

 

'시나이 반도'

이집트의 닛세르 (나세르) 정권은 범 아랍주의, 민족주의를 표방하며 소련과 친밀하게 붙으며 영국이 관리하던 수에즈 운하를 국유화 해버린다. 이에 제대로 화가 난 영-프 연합군이 수에즈 운하를 폭격하고 이스라엘이 참전함으로 시나이 반도를 빼앗지만, 소련의 압박과 세계대전 우려로 전쟁 이전의 상태로 되돌리게 된다.

PLO (팔레스타인 해방기구) 가 설립되고 본격적인 미 - 소가 개입하게 되었다.

 

<3차 중동전쟁> - [6일 전쟁] 부터는 이후 포스팅에서 다룸